투자 전문가들이 모두 똑똑한 바보는 아니다.
존 템플턴같은 위대한 펀드매니저도 있다.
그에게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1972-1974년에 미국 시장 붕괴를 피해갈 수 있었다.
뮤츄얼 셰어즈펀드에 맥스 하이네도 사고가 유연한 독창적 인물이었다.
그의 뒤를 이은 문하생 마이클 프라이스는 스승이 세운 전통에 따라 자산이 풍부한 기업 주식을
1달러당 50센트에 사서 기다렸다가 1달러로 오른 뒤 팔았다.
존 네프도 소외돈 주식에 계속해서 위험을 무릎쓰고 투자한 챔피언이었다.
피터 데로스도 소형주로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
그가 성공을 거둔 비결은 경영대학원을 다니지 않았다는 점이다. 쓸데없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
조지 소로스와 지미 로저스는 풋옵션 매수, 호주채권 헤징 등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난해한 거래로
거액을 벌었다.
단연 가장 위대한 투자가는 워런 버핏이다.
이렇게 탁월한 인물은 소수인 반면, 그저 그런 펀드매니저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렵게 탁월한 종목을 찾아냈다고 하자.
투자 전문가 100명게게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재량권이 있다면 99명이 편입했으리라는 확신한다.
그러나 이제 설명하려는 이유 때문에 이들은 편입할 수가 없다.
현재 제도 아래서는 어떤 주식에 대해서 많은 대형기관들이 투자에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동시에
저명한 분석가들 다수가 이 주식을 추천 목록에 올려놓아야만
비로소 펀드매니저들이 투자를 고려할 수 있다.
리미티드는 뒷북치는 월스트리트에 전형을 보여준다.
1969년 이 회사가 주식을 공개했을 때, 대형기관과 거물급 분석가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기업 공개 주관 회사는 리미티드 본사가 있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소재 베르코앤드코라는 소형 증권회사였다.
월스트리트가 리미티드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가 기업의 중심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이트웰드, 수지 홈스가 몇년 동안 홀로 이 회사를 분석한 뒤에야, 퍼스트보스턴 매기 길리엄이 1974년 공식적으로
인정해서 2번째 분석이 시작되었다.
매기 길리엄도 폭설이 내린 탓에 시카고 우드필드몰을 걷지 않았다면 리미티드 매장을 발견하지 못햇을 것이다.
아마추어 감각을 살린 덕에 이 매장에 관심을 기울였다.
리미티드 주식을 매수한 첫번째 기관은 T로프라이스 뉴호라이즌펀드이다. 매수 시점은 1975년 여름이었다.
당시 전국에 매장 100개가 개점된 상태였다.
관찰력 있는 구매고객은 이 기간에 스스로 회사를 조사할 수 있었다.
1979년이 되어서도 단 두 기관이 리미티드 주식을 보유했다. 보유량도 전체 물량의 0.6%에 불과했다.
1981년 리미티드 매장 400개가 호황을 누리고 있었지만, 조사 분석가는 6명이었다.
1983년이 되자 주가가 중간고점 9달러에 도달하였는데 1979년 매수한 장기 투자자들은 18배의 수익을 올렸다.
1984년 주가가 거의 절반으로 떨어져 5달러가 되었지만 회사는 잘 굴렀다.
1985년 반등하여 15달러에 도달해서야 분석가들이 몰려와 동참하였다.
이들은 리미티드를 지나치게 치켜세우며 앞다퉈 추천 목록에 올려놓았다.
공격적인 기관의 매수로 주가는 52.88달러에 이르렀다.
이 무렵 리미티드를 조사하는 분석가는 30명을 넘어섰고 조사가 시작되자 리미티드 주가는 추락하였다.
-피터린치
누구에게나 알려지는 순간 매력은 없어진다.
아무도 모르지만 매력을 감추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이 있다.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눈에 불을 켜고 매력적인 기업을 찾아내는 것이다.
많은 TV스타들을 보라.
그들을 길거리 혹은 다른 곳에서 발견한 매니저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태그 : 리미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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